2019년 12월 7일 토요일

영화 삼촌 - 사회적 약자의 주체적 진화 의지 (김형진 감독 코멘트)


먼저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 느낌을 간단히 남겨보자면,

전반부와 중반부에서는
루즈함이 느껴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잎새가 파리를 삼킨 이후 
벌어지는 상황들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아래 글은
김형진감독님께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직접 보내주신 글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장편제작지원작 <삼 촌>
주제 - 사회적 약자의 주체적 진화 의지.

<연출 의도>
이 이야기는 선과 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강자와 약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침대 밖을 벗어나, 
개인 하나하나가 모여 대통령을 바꾸듯, 
촛불의 물량에 포커스를 두기 보단, 침대 밖을 벗어
나려 했던 개인의 의지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은 넓은 의미에서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을 넘어 
동물과식물, 그리고 크게는 
생산자와 소비자, 분해자로 나뉩니다.
그 중 생산자는 녹색 식물로 소비자인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영양분이 되는 생물을 말한다.
먹고 먹히는 관계란, 착한 놈 나쁜 놈의 선악 개념이 아닌, 
강자와 약자의 써클 속에 자연스런 생태 흐름일 뿐입니다.




이런 생태계의 흐름은 인간들의 세계에도 적용됩니다.
자연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세계 역시 약자로 표현되는 의미에선 생산자인 
식물이 항상 거론되고 상징화됩니다.
하지만 생산자인 식물 역시 생물이고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움직일 수도, 공격할 수도 없는 식물이란 
생명체가 자신들의 상위 개체들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 까요.
그건 단지, 자신의 개체수를 늘려, 자신이 죽을 확률을 
줄이는 것 뿐.. 그런 식물의 삶은 너무 무기력합니다.
그건 인간들의 세계에도 예외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떠한 생명체도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서 
태어날 수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풍족한 환경, 
열악한 환경을 말이죠.
이미 너무 열악한 환경에 태어난 식물이 있습니다.
 늪지대에선, 태양의 광합성도, 토양의 무기질도 
제대로 섭취할 수가 없지요.
그런 식물은 오랜 기간을 거쳐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상위개체인 동물을 잡아먹음으로 영양분을 
보충하기 시작합니다.
식충식물이란 존재입니다,
어느 날, 이런 식물을 보며 나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식물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사회에 타협하며, 잡아먹으면 먹히는 대로, 
초식동물이 상위 계층의 눈치만 봐가며 살아가 듯.. 
초식동물에게 무참히 잡아먹히는 식물처럼,,
촛불이 타오를 때, 따뜻한 침대 밖을 벗어나기 싫어 
자신을 합리화하며, 세상은 바뀌지 않아.. 
밖은 추워.. 그렇게 살아온 지난
날을 반성하며.. 잎새와 저를 동일시하며.. 
일개 식물조차 자신의 의지로 생태계의 흐름을 
거스르면서까지, 살고자, 진화하고자
본능적으로 꿈틀거리는데.. 나는 뭐지..?
이미 사회적 약자의 위치로 태어나버린 환경 속에서, 
환경 탓 그 이샹의 , 주체적인 진화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자신의 “의지” 그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의지의 발화적 존재.. 이미 진화 과정을 겪은 듯한 
괴물인지, 돌연변인지, 식물인지, 포식자인지, 
가족인지, 이성인지 알 수 없
는 그런 존재.. 그런 어떤.. 초월적 존재인 삼촌에게,
 이성애인지, 가족애인지 모를, 인간만이 
가졌다 자부하는 사랑이란 신비한
감정과 에너지를 통해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
 한 걸음 한 걸음 진화하기 위해 첫 걸음을
 떼어 보는 잎새의 의지 발현..
이런 깊고 어둡고 관능적이고 폭력적이며 
자극적일 수 과정의 이야기를,
최대한 미니멀하고 자극적이지 않게.. 
또한 감각적이고 컴팩트한 폭발력으로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너무 거창했지만, 심플하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잎새가 일어나는 이야기.
그것입니다.